암 환자 열 명 중 한 명은 수치에 예민합니다. 대부분의 암 환자는 수치에 일희일비합니다.
“선생님 오늘 어때요?” “수치가 어떻게 나왔나요?”
‘아주 좋다’는 답변 보다, 정확한 수치가 어떤지 묻는 환자나 보호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 이병욱 박사의 작품
현대 의학의 가장 큰 맹점은 수량화 혹은 정량화의 틀에 가둘 수 없는 인체를 숫자나 컴퓨터로 분석하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정상 간 수치가 40 이하인데, 42가 나왔다고 생각합시다. 분명 정상에서 벗어난 수치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에게 “간 수치가 정상보다 높습니다”라고 말하면, 환자의 불안함은 커지며 마치 본인이 비정상인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음 검사 때까지 그 불안함을 떨쳐버리기도 힘들겠지요.
현대 의학 관점에서 봤을 때 간 수치가 40이 넘어가면 분명 정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완통합의학은 그것을 반드시 비정상으로만 보지 말자는 시각을 취합니다. 치료가 잘 되는 경우와 잘 되지 않는 경우에서의 42라는 수치의 의미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죠.
만약 기존 간 수치가 47이나 45였는데 42로 내려갔다면 정상으로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반면, 기존 간 수치가 36~37이었는데 갑자기 40으로 올랐다면, 정상의 범위 안이지만 반드시 원인을 따져봐야 하는 겁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의학은 일종의 해석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떤 상황이냐를 고려해 보면, 수치의 해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복수가 차는 증상도 환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복수가 차면 환자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마치 자신의 병세가 말기가 된 것처럼 낙담합니다. 심지어 ‘이제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구나’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합니다. 그러나 복수가 차는 증상은 영양 상태의 문제로 인해서 알부민이 떨어지면서 체내 수분을 체외로 배출하는 것이 원활하지 않아져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암 자체나 복막암종증으로 인해 복수가 찰 수도 있습니다.
복수가 찬다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인체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체의 체계적이며 세밀한 방어 전략입니다. 복수를 결과로만 보지 말고 인체가 회복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면 환자는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체에 복수나 흉수 등의 완충액이 없다면 내부 장기는 더 많은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에게 복수가 찬 사실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주기보다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신체의 완충작용이자 몸이 회복되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리·병리적 현상임을 설명하며 격려하는 게 바람직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간 수치 이야기도 같습니다. 간 수치가 40을 넘었다고 해서 “간 수치가 정상치를 벗어나서 높네요”라며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요즘 피곤한 일이 있으셨나요? 휴식을 잘 취하세요”라고 위로하듯 말하는 게 낫습니다. 또한 간에 효과적인 내복약을 처방하면서 다음 진료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말한다면 좋겠지요.
간혹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가끔 부주의하게 말하는 의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환자나 보호자들은 의사의 말을 잘 믿습니다. 하지만 괜찮다는 의사의 말에도 여전히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복수가 찼다는 사실은 무조건 위험한 증세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 환자나 보호자를 위해, 의사들도 좀 더 친절하게 환자의 병세를 잘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사가 잘 설명한다면, 환자가 필요 이상의 공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암 치료와 재발 방지는 수치와의 싸움이 아닙니다. 숫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지요. 몸 상태가 좋거나 나쁜 건 환자 자신이 먼저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검사 결과지의 수치만 알게 되면 그 숫자의 높낮이에 따라 몸 상태로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수치가 정상 범주 안으로 나오면 괜히 몸 상태도 좋은 것 같고, 반대로 수치가 나쁘게 나오면 괜히 몸 상태가 나쁘지 않은데도 나쁜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암 치료는 짧게 끝나는 치료가 아닙니다. 한 번의 검사 수치에 연연하게 되면 계속되는 검사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또 검사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 환자나 보호자 모두 힘들 수 있습니다. 수치가 좋게 나온다면 며칠 동안 행복하지만, 반대로 조금만 나쁘게 나와도 몇 주 동안 불안함을 떨치기 어려워지지요. 따라서 수치에 집착하는 마음은 버리고 반드시 좋아진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투병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오늘부터 수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세요. 수치에 연연하지 않는 당신을 발견했다면, 이미 암 재발로부터 멀어지는 삶으로 걸어가고 있는 겁니다.